유진상 환경칼럼니스트.©열린뉴스통신
유진상 환경칼럼니스트.©ONA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조짐을 보이면서 닭과 오리, 메추리 등 가금류를 키우는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AI는 이달 들어 충북 음성에서 메추리와 오리농장에 잇따라 발병했다. 이어 최근(13일) 전남 나주 오리농장도 고병원성 AI 판정을 받았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다른 농장으로 확산 방지를 위해 즉시 닭과 오리 등을 살처분했다. 아울러 전국 가금류 농장에 대한 방역도 한층 강화했다.

AI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나 야생조류의 바이러스로 생기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의 호흡기 분비물, 대변으로 전파된다. AI는 저병원성과 고병원성으로 구분된다. 철새가 바이러스 전파에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철새들은 감염이 돼도 증상이 약하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철새들의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에 옮겨졌을 때에는 고병원성을 보이게 된다. 특히 닭은 AI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 감염되면 호흡곤란으로 폐사하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충북 청주시 미호천에서 방제 차량 및 인력이 닿지 않는 지역에 무인 방제헬기를 이용한 조류인플루엔자(AI) 방제활동을 하고 있다.(자료=농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가 충북 청주시 미호천에서 방제 차량 및 인력이 닿지 않는 지역에 무인 방제헬기를 이용한 조류인플루엔자(AI) 방제활동을 하고 있다.(자료=농식품부)

AI가 철새로 인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방역당국은 철새도래지 주변 방역 강화에 나섰다. 철새도래지는 겨울철새들의 낙원으로 탐조활동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키우는 농가 입장에선 반가울 리 없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현황에 따르면 국내의 주요 철새도래지는 112곳에 달한다. 겨울철새가 많이 날아드는 지역으로는 충남 서산 간월호를 비롯, 경기 안산 시화호, 전북 익산 만경강 하류, 경기 화성 남양만, 충남 태안 부남호, 강원 철원평야 등이 꼽힌다. AI 바이러스는 철새들의 분변이 묻은 기구나 신발, 의류 등을 통해서도 전파된다고 한다. 따라서 탐조활동을 위해 철새도래지를 방문했을 때는 꼭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

해외언론도 올해 AI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도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최근 아시아와 유럽 등에서 접수된 AI 감염 사례가 급증했다고 밝혔다. OIE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일주일 사이 총 3곳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에선 올해 들어 현재까지 AI 21건이 발생해, 지난해 전체 발생 건수를 이미 넘어섰다. 일본 북동부 지역 한 양계장에서도 H5N8 감염 건이 확인됐고, 유럽 노르웨이의 주에서도 7,000마리 조류 떼가 H5N1 AI에 감염됐다고 보고됐다. 이밖에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도 발생사례가 보도됐다.

축산농가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아직 확산세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AI까지 발병해 또다시 대량으로 살처분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한다. 잠잠해진 것으로 보이는 아프리카돼지열병도 겨울철에 다시 확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 겨울철이 되면 멧돼지들이 먹이활동 등으로 농가까지 접근할 것으로 보여 ASF 발생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방역차량이 계사 주변을 소독하고 있다.(자료=농촌진흥청)
전라북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방역차량이 계사 주변을 소독하고 있다.(자료=농촌진흥청)

​가축 사육농가들은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각종 괴질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수차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대란을 겪으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현장을 목격해왔다. 우리는 2000년 이후 여러 차례 구제역의 재앙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구제역으로 소와 돼지 등 약 39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고, 피해액만도 3조 3,436억원에 이른다. 2010년 발생한 구제역으로 한 해만 35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최악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어 2016년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때는 418건의 양성반응 조치로 3,8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우리는 현재 인간에는 코로나. 가축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인플루엔자로 어느 때보다 긴장상태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구제역, 조류인플류엔자는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체 감염이 가능한 AI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을 때 익혀 먹으면 감염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평소 손을 깨끗이 씻고 달걀 껍데기에 입을 대는 행위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AI 바이러스 감염은 피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한 가축들은 감염 시 대부분 죽게 된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침투되면 가축과 가금류를 키우는 농가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돼지 고기나 달걀 등의 가격이 상승해 서민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도 요즘 언론 매체들은 100여 일도 더 남은 대선 주자들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중계하느라 여념이 없다. 당장 국민들은 코로나에 AI, ASF 바이러스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마당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언론 매체들도 국민의 실생활에 무엇이 선이고 후인지 도움이 되는 사안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겨울철새들이 무슨 잘못일까.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우리들과 공존 공생하는 생물로 함께 할 수 있는 대안 마련도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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